2022년 3월29일 다해 사순 제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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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겐 이 두 질문의 답을 찾기 전까지는 안식이 없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 있는 벳자타 못에서 병의 치유를 바라며 38년이나 매일 그곳에 나와 앉아있는 사람을 치유해 주십니다.
우선 요한에게 ‘양 문’이란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들어가는 하느님 나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40’을 채워야 합니다. 숫자 ‘40’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이 완성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숫자입니다.
38년은 ‘은총과 진리’, 곧 ‘2’가 모자란 숫자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은총과 진리를 충만히 지니신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은 이 은총과 진리가 어떻게 전해지는지 보여주십니다.
먼저 ‘벳자타’는 ‘올리브의 집’이라 번역될 수 있습니다. 은총은 보통 기름으로 상징됩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는 것이 곧 ‘은총’입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온 그에게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으로써 벳자타 연못의 병자는 완전히 그리스도의 양이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은총과 진리를 받기 전에 38년이나 은총을 바라며 연못에 머물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벳자타 연못에 가끔 천사들이 내려오는데 그때면 물이 출렁인다고 합니다. 그러면 가장 먼저 뛰어 들어가는 한 사람만 치유를 받습니다. 하늘의 은혜를 바라며 평생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을 주님은 불러주십니다.
‘가톨릭 신문’에 카이스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이론물리학연구센터에 재직 중이던 뛰어난 물리학자가 사제의 길을 택한 예수회 김도현 바오로 신부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외아들인 그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친척들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오늘 벳자타 연못에서 일어난 일을 볼 수 있습니다.
김 신부는 50년 중 30여 년이 하느님을 찾아가는 시기였다고 표현합니다. 38년은 안 돼도 30년을 찾은 것입니다. 76년도 4월에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갑자기 쓰러지셨고 수술은 해야 하지만 사실상 사망하실 가능성이 더 컸던 시기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뇌종양을 수술해서 살아나신 분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살아나셨고 그 후유증을 견디며 사셔야 했습니다.
이때 친가의 유일한 천주교 신자께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인간의 생사를 쥐고 계신 분은 따로 계시다”라는 말씀과 함께 세례를 받기를 권유했습니다. 이때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그 뒤로 계속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미사도 다니고 냉담도 하며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김 신부는 공부를 잘하여 카이스트에 입학하였습니다. 삶은 하루하루가 고난이었습니다. 굉장한 경쟁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안 되는 학생들은 아래서부터 퇴학당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에도 몇 명씩 자살하는 학생들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실제로 자신이 잘 아는 친구도 자살하였습니다. 여러 친구가 학업 때문에 목숨을 끊는 것을 보며 다시 76년에 자신에게 닥쳤던 질문이 심각하게 다시 올라왔습니다.
“인간의 생과 사는 과연 무엇인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왜 사는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죽음 이후의 세상은 무엇인가?”
물론 주위에 천주교 신자들이 있었지만, 과학을 공부하다 보니 과학만능주의에 빠져 신앙에서는 다들 멀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이제 과학이 죽음과 내세까지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세례를 받았어도 더는 벳자타에 나오지 않게 된 것입니다. 생과 사를 주관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지 않으면 주님은 그 사람에게 은총을 주실 수 없으십니다. 그러나 김 신부는 이 질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김 신부는 그런 사조에 빠지지 않고 대학원 다니면서도 오히려 매일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논문 지도교수가 그런 것을 원치 않았음에도 그는 더 중요한 질문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악착같이 매일 미사와 묵주기도, 성체조배를 했습니다.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을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2000년에 어머니와 상주 가르멜 수녀원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원장 수녀님이 “수도 성소가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버지를 통해서는 은총을, 이 수녀님을 통해서는 진리가 다가온 것입니다. 어머니께서는 펄쩍 뛰셨고 김 신부는 귀가 솔깃했습니다. 수녀님은 예수회에 가는 것이 낫겠다 하셨고 그 이후 예수회 성소자 생활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서울대 이론물리학연구센터에 가서 일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결혼해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습니다. 이때 자신의 학년에서 가장 유능하여 3년에 대학을 끝내고 또 3년에 박사 학위를 마쳐 독일 연구원에서 경력을 쌓고 있던 누구나 부러워하던 한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됩니다. 2004년의 일입니다. 며칠간 큰 충격에 빠져 있다가, 다시 생사를 쥐고 계신 분 그리고 삶의 의미를 바라볼 수 있었고 수도회 입회의 마음을 굳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처음의 질문이 인간의 생사를 쥐고 계시는 분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이었다면, 이젠 그분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질문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은총과 진리가 주는 답변입니다. 먼저 여러 기적과 같은 체험을 통해 생사를 쥐고 계신 분이 당신임을 알려주시고 그다음엔 진리를 통해 죄짓지 말고 이웃의 영혼 구원을 위해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기도하던 중 한 성경 구절이 머릿속을 스쳐 갔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마르 8,35)
순간 세상에서 무엇을 가진다 한들 결국 하느님 품에서 제대로 죽는 게 가장 좋은 삶이고, 다른 이들 또한 그렇게 잘 죽도록 도와주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주님, 이제 저는 그냥 무조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 묻는 것을 포기하면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은 질문들이 있습니다. 생과 사를 주관하는 분이 계신지, 나는 왜 생겨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입니다. 벳자타 병자의 38년은 생과 사를 주관하는 존재를 찾는 마음입니다.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찾는 마음입니다. 이 두 질문은 그리스도께서 은총과 진리로 응답해 주십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하느님의 양의 무리에 들게 됩니다.
벳자타 연못은 하느님 나라의 양의 무리에 들기 위해 반드시 고민해야만 하는 그곳에 끝까지 머물 줄 아는 마음을 상징합니다. 그 마음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주님은 은총과 진리로 그 사람을 당신 우리로 초대하십니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면 아직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요한 5,6)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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