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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22일 사순 제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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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에 제한이 생기면서 국내 여행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천주교 신자들은 해외 성지순례가 어려워 국내 성지순례를 많이 다니십니다. 성지순례 책자에 167곳의 국내 성지가 나오는데, 완주하고 나면 강복장과 묵주를 받을 수 있어서인지 더 순례하시는 분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이 순례자를 향한 시선이 좋지 않을 때를 종종 봅니다.


이들이 ‘찍기 순례’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스탬프를 책자에 찍어야 완주 표시를 할 수 있는데, 성지에서 전혀 기도하지 않고 스탬프만 찍고 다음 성지로 급하게 떠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이들처럼 ‘찍기 순례’를 해보았습니다. 스탬프만 찍고 휙 둘러보고 다음 성지로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모든 순례지를 열흘 만에 끝냈습니다(새벽 4시부터 저녁 8시까지 순례했습니다).


제대로 순례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쓸모없는 시간 낭비만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온종일 주님과 성모님, 순교 성인·성녀들을 생각하며 살았기에 굳이 성당에 들어가지 않아도 행복한 마음이었습니다. 여기에 모든 성지를 완주했을 때의 기쁨은 덤이었습니다. 이렇게 순례하는 것도 괜찮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남을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남의 신앙에 대해서는 절대로 ‘옳다, 틀리다’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 나름의 신앙을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이 감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남에 대한 모든 판단이 그렇습니다. 이 판단으로 남을 미워하고 단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자격이 과연 우리에게 있기는 할까요?


구약시대의 율법에는 ‘눈은 눈으로 갚고 이는 이로 갚아라.’라는 법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복수하지 말고 그 대신 용서하라는 새 윤리를 가르치십니다.


유다인들도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하면서 남을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세 번까지 용서했지만 네 번 이상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새 나라의 새 법에서는 몇 번까지 용서해주어야 할지를 정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는 힘껏 잡아서 일곱 번을 생각했습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일곱이라는 숫자가 완전수라면, 예수님께서 제시한 용서의 횟수는 베드로가 제시한 수를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용서하는 데는 몇 번이라고 딱 끊어서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용서에는 한도가 없습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그만큼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판단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것이 하느님 나라라는 새 나라의 새로운 법이었습니다. 판단과 단죄라는 세상의 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한도 없는 용서를 통한 하느님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이 유혹을 받아 쓰러진 곳이면 당신도 그 자리에서 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라(오스왈드 챔버스).



빠다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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