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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6일 다해 사순 제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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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지 못하면 사랑이 아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시는 내용입니다. 정말 잘 알아두어야 할 것은 예수님을 광야에서 악마에게 유혹을 당하도록 이끄신 분은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루카 4,1-2)



    다시 말해 성령께서 오지 않으시면 누구도 광야에 나가지도 않고 유혹과 싸우지도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유혹과 싸우게 만드시어 주님께 더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유혹과 싸우면 그 사람 안에는 반드시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자신과 싸운다는 말은 자아의 세속-육신-마귀와 싸운다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귀가 세상을 섬기라고 유혹한 것이 세속이요, 돌을 빵으로 만들어 보라고 한 것이 육신이며, 성전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한 것이 마귀입니다. 세속-육신-마귀와 싸우고 있음이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죽입니다. 죽이지 못하면 사랑이 아닙니다.  


    JTBC, ‘내가 키운다’에서 ‘ADHD 솔루션 중단 위기?! - 다시 시작되는 우경이와의 전쟁’이 방영되었습니다. 이지현 씨의 아들 우경이는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엄마를 몰아붙입니다. 전문가들이 여러 해결방법을 알려주고 지현 씨도 노력했지만 잘 먹히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엄마 앞에서 집을 나가겠다고 하고 죽어버리겠다고 합니다. 이에 이도 저도 안 되는 상황 때문에 지현 씨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립니다.  


    사랑은 분명 상대를 죽이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지현 씨 사랑은 우경이를 죽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분명 지현 씨가 하는 것은 참으로 사랑이 아닙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령을 부를 때, ‘사랑’(Amore-Persona)이신 한 인격체로 규정합니다. 성령께서 사랑이시기에 사랑과 반대되는 생존 욕구와 싸움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결국엔 죽입니다. 가리옷 유다처럼 다 성장하여 본인 의지로 성령을 거부하면 모를까 아이들은 100% 부모님 사랑이 참사랑이라면 반드시 자아가 죽습니다. 이것이 사랑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는 엄마가 사랑이 아닌 집착을 하고 있음을 알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을 얻어내려 떼를 쓰는 것입니다.  


    영화 ‘몽골’(2007)을 보니 세계 절반을 차지했던 칭기즈 칸이 그냥 싸움만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싸움으로 그토록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 부족의 세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던 12세기 몽골. 훗날 대륙의 지배자로 불리게 될 대 몽골 제국의 창시자, 테무진이 태어납니다. 테무진의 아버지가 자신의 부족을 지키기 위해 아들 테무진을 경쟁 부족과 혼인시키러 가던 도중 잠깐 들린 곳에서 테무진은 보르테라는 여자아이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5년 뒤 돌아와 혼인하기로 약조합니다. 그러나 그 부족은 큰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테무진의 선택을 존중하여 돌아갑니다. 그러다 결국 아버지가 경쟁 부족에 의해 살해당합니다.  


    어쩌면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버지를 잃은 테무진은 그 탓을 자신의 마음을 빼앗은 보르테에게 돌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테무진은 그럴수록 더욱 보르테를 사랑하였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집으로 돌아온 테무진은 자기 부족 이인자의 반란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됩니다. 수레바퀴보다 키가 작은 아이는 죽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행히 어린 테무진은 살아남게 됩니다. 그러나 항상 쫓겨 다니며 조금씩 성장합니다. 이때 테무진을 도와준 것은 이웃 족장 아들 쟈무카였습니다. 그리하여 테무진은 쟈무카와 의형제를 맺습니다.   


    쟈무카 덕분으로 무사히 어른으로 성장한 테무진은 결혼을 약속한 보르테를 찾아가 혼인을 청합니다. 하지만 복수의 씨를 없애려 테무진의 아버지를 배신한 이인자에게 보르테를 납치당합니다. 보르테는 화살에 맞은 테무진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대신 납치당한 것입니다.  


    테무진은 자신의 의형제이자 이젠 어엿한 한 부족의 수장이 된 쟈무카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합니다. 쟈무카는 한 여자 때문에 전쟁해 달라는 테무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보르테가 아니면 안 된다는 테무진을 도와주기로 합니다. 테무진은 보르테를 위해 자기를 낮추는 수모를 감수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보르테를 찾은 테무진은 보르테가 원수의 아이를 배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테무진은 그동안의 보르테의 고통을 생각하고 원수의 아이도 자신의 아이로 받아들입니다. 원수의 아이를 키워야 하는 테무진이지만 그냥 보르테가 자신의 아내가 된다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쟈무카는 테무진을 이인자로 임명하려 합니다. 그러나 보르테는 한 우리에 두 이리가 살 수 없다고 테무진을 설득합니다. 테무진은 쟈무카에게서 벗어나 자신의 세를 늘립니다. 이젠 쟈무카와 원수지간이 됩니다. 테무진은 지금까지 자신을 돌봐준 의형제와 갈라지게 했지만 여전히 보르테를 사랑합니다.  


    쟈무카도 점점 세력이 커지는 테무진을 그대로 놓아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을 일으켜 테무진을 생포합니다. 테무진은 자신이 잡히는 대신 보르테와 가족들을 피신시켰습니다. 테무진에게 영예로운 죽음을 선사할 수 없었던 쟈무카는 테무진을 누구도 찾기 힘든 아주 먼 곳의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감옥에 갇힌 테무진이 미래에 세상을 통치할 인물이 될 것을 알아본 한 스님이 있었습니다. 테무진은 그 스님에게 보르테를 찾아가게 합니다. 멀리 달려온 스님은 보르테에게 테무진이 살아있음을 알리고 지쳐 죽습니다. 한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그 먼 길을 혼자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이에 보르테는 테무진이 살아있는 곳으로 가는 상인 대열에 끼여 그들에게 몸을 팝니다. 그러다 보르테는 또 테무진의 아이가 아닌 상인의 아이를 낳습니다. 테무진은 보르테의 기략 덕분으로 감옥에서 탈출합니다. 그리고 상인의 아이를 보며 보르테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생각합니다. 보르테도 테무진 때문에 순결을 잃고 남의 아이를 여러 차례 낳아야 했지만 불평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몽골의 통일을 두고 이제 테무진은 쟈무카와 격돌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쟈무카의 군대가 더 강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때마침 천둥과 번개가 쳤습니다. 몽골인들은 번개를 무서워하여 번개가 치면 땅에 주저앉습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던 테무진은 덕분에 땅에 웅크린 쟈무카의 군대를 일망타진합니다.     그렇게 몽골을 통일시키고 이제 세상을 정복하는 칭기즈 칸이 됩니다. 그는 끝까지 보르테를 존중했고 가장 사랑하고 아꼈으며 그녀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고 합니다.  


    사랑은 이토록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성령은 “가난해져도, 먹을 것이 없어도, 멸시를 당해도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사순 때 이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내 모든 것을 잃어도 상대의 존재만으로 행복할 수 있어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17살 고등학생이 된 홍원기는 소아조로증을 앓고 있습니다. 국내에 유일한 프로제리아라는 이 조로증은 어린이에게 조기 노화 현상이 발생하는 유전질환입니다. 아빠는 강연과 글로 돈을 벌었는데, 코로나로 이것이 잘 안 돼서 “원기야, 아빠 이제 뭐 하지?”라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원기는 아빠에게 “오늘도 최고의 하루를 사는 거야. 한 번뿐인 인생 후회하지 않도록”이라고 말해줍니다.  


    원기의 시간은 남들보다 7배나 빠르게 흐릅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만으로 ‘최고의 하루를 살겠다’라고 말하는 원기가 참 대단해 보입니다. 그리고 사순을 지내는 의미가 원기처럼 주님만 있으면 상황이 어떻든 오늘 하루를 최고로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는 믿음을 키우는 것임을 되새기게 합니다. 그의 부모가 준 사랑은 분명 원기의 자아를 죽였기 때문에 진짜입니다.  


    하느님은 사탄을 시켜 의로운 욥의 재산, 자녀, 자신의 건강과 명예까지 다 빼앗으십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하십니다.  


    “벌거벗고 세상에 태어난 몸, 알몸으로 돌아 가리라. 주께서 주셨던 것, 주께서 도로 가져가시니 다만 주님의 이름을 찬양할지라.”(욥 1,20)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은 돈이 없어도, 먹을 게 없어도, 멸시받아도 최고로 행복한 하루를 살 수 있음을 매일 우리에게 일깨워주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창조해주신 분을 향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유혹의 궁극적인 목적은 불만으로 내일을 희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지금, 이 순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기도, 자선, 단식하며 고통을 받는 것이 사순이 아닌, 그런 것을 통해 고통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는 훈련하는 것이 사순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 자아를 죽이는 하느님이 보내신 불칼입니다. 


유튜브 묵상 동영상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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