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7일 주님 부활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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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40일간의 사순시기를 모두 지내고 우리는 예수님의 기쁜 부활을 맞이했습니다. 정말로 기쁘신가요? 혹시 반복되는 또 하나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시겠죠?
매년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합니다. 가톨릭 신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부활’은 우리가 기쁘게 신앙생활 하는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과연 기쁘게 부활을 맞이합니까?
매년 맞이하는 것이니 힘들지 않겠냐고 하십니다. 그러나 자기 생일을 기억해보세요. 매년 맞이하는 생일인데 왜 의미 있는 시간으로 생각하십니까?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생일은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갖게 된 기념일은 또 어떻습니까
매년 똑같이 맞이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맞이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매년 맞이하는 연중행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사랑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인간적인 기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오직 신앙 안에서, 또 사랑 안에서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마치 주님께서 세 번이나 말씀하셨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아직 깨닫지 못한 제자들의 모습처럼 우리도 주님의 부활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 시신에 향유를 바르기 위해 무덤을 찾아갑니다. 여기에 그녀는 큰 문제가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향유를 바르려면 무덤을 막아놓았던 돌을 치워야 하는데, 여자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다른 복음에서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갔다고 되어 있지만, 그래도 여자들의 힘으로 치울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무덤에 향유를 들고 찾아갑니다. 그만큼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을 들고 무덤을 찾았지만,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고 무덤이 비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곧바로 시몬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말합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2)
베드로가 이 말을 듣고 요한과 함께 뛰어갑니다. 그리고 무덤에 들어가서 보니 예수님의 얼굴에 쌌던 수건이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는 것입니다. 이는 시신을 도둑맞지 않았다는 표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음을 깨달을 수 있는 순간입니다.
사랑으로 주님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어떤 경우에도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랑받기를 원할 뿐 아니라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애덤 스미스).
빠다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