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의 부마 창녕위 김병주 가문을 소개한다[문암 역사작가의 보금자리-202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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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요새 관월당에 봉안된 인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순조의 차녀
복온공주를 주목하게 되었다.
복온공주와 관련해 "왕실의 사당으로 추정되는 '관월당'을 바라보는 눈"
제하의 칼럼을 완성한 바 있다.
오늘은 후속 칼럼으로 복온공주의 남편이면서 순조의 부마가 되는
창녕위 김병주의 가문을 소개하는 시간을 갖기로 하겠다.
창녕위의 본관은 (신)안동김문이며, 숙종 대에 영의정을 역임한 문곡
김수항의 7대손이 된다.
필자는 창녕위의 선조중에서 특히 화서 김학순의 행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1767년에 탄생하여 1845년 향년 79세를 일기로 운명하였으니 사실상
80평생을 산 것이니 당시로서는 상당히 장수했다고 할 수 있다.
1805년 실시된 증광문과에서 장원급제한 것을 시작으로 40여년에 걸친
공직생활을 수행하면서 청렴과 근면으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관직이 정승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조판서까지 역임하였으니 당시
조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본다.
특히 1830년 손자 김병주가 순조의 차녀 복온공주와 혼인을 맺으면서
왕실과 사돈이 되는 위상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복온공주가 1832년 불과 15세라는 꽃다운
연령에 세상을 떠났으니, 이는 왕실의 불행이면서 동시에 부마가 되는
창녕위 가문에도 불행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창녕위와 복온공주 사이에 후손을 두지 못한 관계로 김도균을
양자로 대를 이었으며, 그 이후 김석진에 이어서 김영한까지 양자로 대를
잇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서도 창녕위의 손자가 되는 김석진은 경술국치 이후 일제에
저항하는 의미에서 장렬히 순국의 길을 택한 애국지사 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이상과 같이 창녕위 가문을 소개하면서 앞으로도 관월당에 봉안된 인물이
과연 복온공주가 되는 것인지 그 진실을 규명할 수 있도록 혼과 정성을
다할 것이다.
2026년 4월 9일(목) 문 암 올 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