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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사당으로 추정되는 '관월당'을 바라보는 눈[문암 역사작가의 보금자리-202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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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관월당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개월전인, 2025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핸폰에서 기사를 검색하던 중, 일본에서 100년만에 귀환한 문화재를 소개한 기사에 눈이 번쩍 뜨였다.


평소에 인물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왕실 문화재와 관련된 기사를 발견하여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


기사 내용의 핵심은 일본에 있다가 100년만에 귀환한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는 관월당을 소개한 기사였다.


이러한 관월당 기사를 본 것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본격적으로 조사를 시작하였으나 꾸준히 하지 못하고 중단하였다.


덧붙이면 관월당이 왕실의 사당으로 추정이 되나 배향된 인물을 비롯해 본래의 이름,건립연도, 현재의 위치 등이 전혀 규명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 관월당의 실체를 조사하다가 다른 연구를 하게 되어 부득이하게 중단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해가 바뀌었으며, 얼마전에 유투를 보다가 KBS에서 2016년 3월 15일에 관월당을 소개한 프로를 방영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처음에 발견할 당시에는 13분 영상이었는데, 일단 전부 시청한 이후 풀 영상으로 된 프로를 시청하였는데, 전체가 47분에 이르는 분량이었다.


결국 이 프로를 전체 시청한 이후 작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관월당의 새로운 모습을 재발견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재발견이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작년에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던 관월당의 실체파악에 도전하기로 결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오늘은 그동안 조사한 내용중에 핵심적인 포인트를 소개한다.


필자는 관월당에 배향된 인물이 누구인지 여부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단 인물을 찾게 되면 이름을 비롯해 건립연도와 위치를 규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KBS 방송과 함께 작년에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면서 불교방송에서도 비슷한 분량의 방송을 제작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프로들을 각각 2회 시청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관월당과 관련된 여러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필자는 관월당에 배향된 인물의 범위를 좁혀서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와 순조의 차녀 복온공주로 정리하였다.


먼저 문효세자 같은 경우 처음에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자료조사를 종합적으로 취합한 결과 그 가능성이 다소 희박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문효세자가 1786년 불과 5세라는 어린 연령에 훙서한 이후 안국방에 모친이신 의빈성씨와 함께 사당을 건립하게 된다.


여기서 문효세자의 모친 의빈성씨가 문효세자가 훙서한지 불과 4개월만에 세상을 떠나니 그야말로 연속적인 왕실의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정조는 사당을 각각의 장소에 건립하지 않고 같은 장소에 문효세자와 의빈성씨의 사당을 건립하게 된다.


그런데 문효세자의 사당이 1870년 창의궁 별묘로 옮기게 되었는데, 당시 이 곳에는 불과 3세라는 어린 연령에 세상을 떠난 정조의 친형 의소세손의 사당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변수가 발생하니, 1900년 문효세자와 의소세손의 사당을 (구)영희전터로 옮기게 되었으며, 1908년 순종황제 칙령 50호에 근거하여 왕실의 사당들을 통폐합하게 될 때 문효세자와 의소세손의 신주는 땅에 묻고 사당 건물은 국가로 귀속이 된 이후 철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관월당이 문효세자의 사당과 동일한 건물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제 문효세자와 관련된 내용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고 순조의 차녀로서 불과 15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복온공주와 관월당의 관련성을 소개한다.


관월당이 과연 어느 지역에 위치했는지를 고찰할 때 바로 송현동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송현동은 본래 순조의 차녀인 복온공주가 안동김문의 김병주와 혼인한 이후 거주한 처소인데, 흔히 창녕위궁으로 알려졌다.


사실 필자도 이런 내력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얼마전에 지인이 알려줘서 비로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런데 슬프게도 오빠인 효명세자가 수중의 연꽃으로 칭하였던 복온공주가 혼인한지 불과 2년만에 세상을 떠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때가 1832년인데 효명세자 또한 왕실의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1830년 불과 22세라는 젊은 연령에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훙서하였으니, 참으로 왕실의 불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복온공주가 세상을 떠난 이후 사당을 건립하고 다례를 올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다례라 함은 왕실에서 올리는 제사의 명칭이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사당이 있었을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바로 " 갑오 재동 제물정례책(甲午齋洞祭物定例冊) " 제하의 자료를 통해서 였다.


이 자료는 1834년 순조가 승하하기 몇개월전, 사위인 김병주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용은 1834년 한해 동안 궁과 묘소에서 다례를 올린 음식들의 리스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순조가 이러한 귀한 자료를 남기고 몇개월후에 승하하였으니 부왕으로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한편 김병주는 1853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두분 사이에 후손이 없어서 김도균이 양자가 되어 대를 이었으며, 다시 김석진이 양손이 되어 대를 잇게 되었다.


그러다가 1907년 김석진이 번동으로 이주를 하게 되면서 경술국치 이후 창녕위궁의 소유권이 순종황제의 장인 윤덕영에게 넘어간다.


그 이후 이러한 소유권이 1920년경에 식산은행으로 넘어 가면서 실로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


1924년 식산은행의 후원자라 할 수 있는 스기노 긴세이가 조선으로 입국하였는데, 방송의 내용에 따르면 조선왕실에서 식산은행에 담보로 맡긴 관월당이 있었다는 것인데, 이 건물을 식산은행이 스기노 긴세이에게 기증하였다는 것이며, 이 관월당이 바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100년동안 머무르다가 2025년 6월에 한국으로 귀환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관월당의 구조로 볼 때 조선왕실의 사당으로 추정된다는 것인데, 필자는 바로 관월당이 송현동에 있었던 복온공주의 사당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물론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나 여러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동일건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이상과 같이 그동안 조사한 내용을 정리하였는데, 아직 완성된 단계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면서 보다 더 진전된 내용이 발견되면 다시 소개할 예정이다.


2026년 4월 1일(수) 문 암 올 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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