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암칼럼] 조선왕조 성군(聖君) 세종(世宗) 생애 연구(2)[강원경제신문-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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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암 박관우.역사작가/강원경제신문 칼럼니스트 © 박관우
태종 실록(太宗實錄) 1418년(태종 18) 6월 17일자 기사(記事)에 태종이 충녕대군(忠寧大君)을 왕세자(王世子)로 책봉(冊封)하면서 내린 책문(冊文)을 인용한다.
“저이(儲貳)를 세우는 것은 인심(人心)에 관계되므로 실로 큰 전장(典章)이 되어, 원량(元良)을 골라서 나라의 근본을 바로잡는 데 오직 지극히 공정(公正)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융성한 명위(名位)를 바로잡아 봉숭(封崇)의 예식을 거행하노라.
아아! 너 충녕대군(忠寧大君)은 관홍(寬弘) 장중(莊重)하고 효제(孝悌)) 겸공(謙恭)하여 사랑과 공경으로 어버이를 섬기고, 도(道)를 지켜 공경하고 삼가며,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하여 오직 날마다 부지런히 하니, 나라 일을 부탁(付託)함이 마땅하고, 신민(臣民)들이 촉망(屬望)하므로 이 때문에 너를 책봉(冊封)하여 왕세자(王世子)로 삼노라.
아아! 하늘은 밝은 덕(德)이 있는 자에게 복(福)을 주고 신(神)은 지극한 정성을 흠향하니, 제사를 주장하고 종사(宗社)를 계승하되, 오히려 지워진 짐이 어렵고도 큰 것을 생각하여 깊은 못에 임(臨)하여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여, 길이 복록(福祿)의 평안을 누릴지어다.”
이와 같이 태종이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책봉한 이후 2개월이 흐른 8월 8일에 선위(禪位)하여 왕세자 충녕대군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세종(世宗)의 시대(時代)가 개막(開幕)되었다.
한편 세종이 즉위(卽位)한 이후 1420년(세종 2) 3월 집현전(集賢殿)을 설치(設置)하였는데, 본래 집현전은 1136년(인종 14) 고려(高麗) 인종(仁宗) 대에 설치되었던 연영전(延英殿)을 집현전으로 변경(變更)하면서 그 역사(歷史)가 시작되었는데, 세종이 이를 확대(擴大)하여 다시 설치하였다.
집현전의 출발(出發)은 경사(經史)를 강독(講讀)하고 제술(製述)하게 할 것을 골자(骨子)로 하였으며, 한때는 홍문관(弘文館), 예문관(藝文館), 성균관(成均館), 춘추관(春秋館), 승문원(承文院), 교서관(校書館) 등의 일을 도맡기도 하였는데, 고려에서 조선(朝鮮)으로 세종 대에 걸쳐 과도기(過渡期)의 문물 정리(文物整理)에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세종은 제도(制度)와 국가 시책(國家施策)의 근본(根本)을 집현전에 있는 학사(學士)들에게 물을 정도로 집현전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집현전은 설치부터 폐지(廢止)될 때 까지 여러모로 변천(變遷)하였는데, 정3품의 아문(衙門)으로서 영전사(怜殿事), 대제학(大提學), 제학(提學)은 겸관(兼官)이었으며 그 이외에 전임 학사(專任學士)가 있었는데, 젊고 유능한 선비들 중에서 20명을 선발(選拔)하였다.
*문암 박관우.역사작가/강원경제신문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