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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5일 다해 주님 수난 성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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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스도를 잡아 바치는 사람이 꼭 ‘나’여야 하는가? 


  제가 비르짓다의 주님 수난 ‘7기도’를 바치면서 궁금했던 것 하나는 나의 죄를 대신해 그리스도를 바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로 짓는 중죄를 막기 위해 “예수님의 첫 번째 상처와 그 첫 번째 고통과 첫 번째 피흘리심을 바치나이다”라고 하던가, 하느님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을 증가시키기 위해 “올리브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마음으로 당하신 무서운 고통과 흘리신 그 하나하나의 핏방울을 모두 바치나이다”라는 식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치는 사제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 요한의 수난 복음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겉옷과 속옷을 나누어 가지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병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병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분의 겉옷을 네 개로 쪼개어 나누어 갖고 속옷은 제비를 뽑았습니다. 사제의 속옷은 흰 아마포로 되어있었고 정결함을 상징했습니다.  


    저는 왜 우리가 직접 그리스도를 죽여 바치는 제사장이 되어야 하는지 알렉산드로와 마리아 고레티의 예를 들어 다시 들며 설명해보고 싶습니다.  


알렉산드로는 순결한 마리아 고레티를 칼로 수십 차례 찔러 죽였습니다. 그는 회개하지 못하고 감옥에서도 난동을 부렸습니다. 이때 마리아 고레티는 알렉산드로에게 나타나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을 주었습니다. 그제야 알렉산드로는 다른 누구 때문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욕정이 순결한 그녀를 죽게 했음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마리아 고레티가 알렉산드로에게 준 백합이 오늘 복음에서는 로마 병사가 제비를 뽑아 갖게 된 예수님의 속옷과 같습니다.  


    속옷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제비는 운입니다. 운이 좋은 사람만 그리스도의 순결함을 얻습니다. 우리가 바치는 제물이 흠이 없이 정결한 것이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바로 나의 죄를 그에게 뒤집어씌워 그 죗값으로 그가 죽게 만들어야 그 순결한 이의 순결한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정결하지 못한 여인을 죽인 것이라면 알렉산드로는 정결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세상에서 부정한 것을 없앴다고 오히려 자랑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나의 죄 때문에 나의 가장 사랑하고 순결한 누군가의 목숨을 잃게 했다고 느낄 때 그 순결함을 내가 선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곧 내가 그리스도를 봉헌한다고 다 정결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분으로부터 백합을 받는 이들만이 그분의 순결함을 입게 됩니다. 주님은 당신의 죽음이 내 죄 때문임을 끊임없이 묵상하는 이들에게 이 행운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겉옷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바로 ‘지위’입니다. 옷은 지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네 개로 나누어 가졌다는 말은 이 지위를 원하는 이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은총의 풍부함을 상징합니다. 에덴동산에서도 한 줄기였던 물이 나중엔 네 줄기로 나누어져 온 땅을 비옥하게 하였습니다. 이렇듯 숫자 ‘4’는 동서남북을 가득 채울 수 있는 풍부한 하느님 자녀의 지위를 말합니다.  


    알렉산드로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기에 순결한 마리아 고레티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나온 뒤 고레티 어머니를 찾아가 용서를 청하고 자신은 수도원에 들어가 평생을 정원지기로 살며 보속하다가 죽습니다. 그때 채우지 못했던 욕정을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마리아 고레티가 가진 하느님 자녀의 지위를 그녀를 찌름으로써 가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찌름으로써 하느님의 지위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찌른 이가 누구인지 보아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예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이교도에게 총을 맞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위험한 부위를 지나쳐서 살 수 있었고, 교황은 그 광신도를 찾아가 용서해 주었습니다. 이제 그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분을 자신이 믿은 종교 때문에 그렇게 다치게 하였다는 것을 깨달으면 그는 그 종교에 계속 머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교황이 지닌 하느님 자녀의 지위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기 지위 탓이 아니라고 여기면 교황이 주려는 겉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야곱이 에사우의 옷을 입고 자신을 에사우라고 하였듯이, 내가 그리스도를 죽이는 이유는 내가 그리스도라고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겉옷을 입는 이유입니다.  


    짐 엘리엇(Jim Eliot, 1927-1956)은 미국의 침례교회 선교사입니다. 플리머스 형제단(Plymouth Brethren) 및 세계 성서번역 선교회(GBT)선교사이며, 에콰도르 원주민을 선교하려다가 순교하였습니다. 


    짐 엘리엇은 1927년 10월 8일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한 아버지 프레드(Fred)와 스위스 출신의 어머니 클라라(Clara)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부모 밑에서 자란 짐 엘리엇은 1945년 가을 일리노이 주서부 시카고에 위치한 복음주의 기독교(evangelical christian) 학교인 휘튼 대학교(Wheaton College)에 진학하여 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선교를 위해서 생애를 바치기로 작정했습니다. 


    명문 휘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후 SIL 교육기간을 거쳐 1952년 봄 에콰도르에 도착한 짐 엘리엇은 와오다니(Waodani)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현지에서 언어와 풍습을 익히며 함께 선교활동을 할 친구들을 모았습니다.  


    몇 달 전부터 비행기를 이용하여 선교 방송과 함께 선물꾸러미를 투하해 접촉을 준비한 짐 엘리엇과 일행 4명(네이트 세인트,피트 플레밍,로저 유드리언,에드 맥컬리)은 1956년 1월 8일 와오다니(Waodani) 부족민들과 직접 접촉하려고 했으나, 백인에 대해 적대적인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아 전원 사망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들의 주머니에 권총이 그대로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발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영혼이 구원받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엇은 아우카족에게 제대로 복음도 전하지 못했고 성경책 한 권도 전해 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 열매는 매우 컸습니다. 


    짐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Elisabeth)는 남편이 순교한 지 2년이 지난 1958년 가을에 그녀 역시 목숨을 걸고 남편이 이루지 못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어린 딸 밸러리(Valerie)와 함께 아우카 부족을 찾아갔습니다. 엘리자베스가 만나 본 아우카 부족은 남자 어른이 8명에 불과한 56명의 작은 부족이었습니다. 


    이 종족은 여자들은 죽이지 않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노력으로 아우카 부족이 복음화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을 살해한 3명이 현재 와오라니 교회의 목사와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목사들을 죽인 이들이 목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죽이고 부모처럼 된 사람들입니다. 부모의 속옷과 겉옷을 입었습니다. 부모의 피를 통해 우리 동물적 본성이 정결하게 되었고 부모의 인간성을 물려받아 인간과 교류할 수 있는 지위에 올랐습니다.  


    이렇듯 나는 지금 누군가를 죽이고 그 누군가의 정결함과 정체성을 입어 지금의 내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누군가가 사는 세상에서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 자녀의 지위를 가진 자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곳에 살려면 하느님 자녀를 죽여야 합니다. 그래야 그 정결함과 지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직접 그분에게 채찍질하고 멱을 따고 십자가에 못 박고 껍질을 벗기고 토막 내 불살라야 합니다. 이것이 제물을 바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누구셨는지 알아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의 정결함과 지위를 얻어 영원한 나라에서 살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돌아가신 이유고 이것이 내가 그분을 죽여 봉헌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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