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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8일 사순 제5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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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의대 교수는 의대생들이 시험에서 모르는 문제가 나왔을 때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답지에 적어낼 때 감점을 아주 크게 한다고 합니다. 보통 답을 몰라도 자기 나름의 답을 적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의대 교수는 의사가 생명과 연관된 직업이기에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하긴 진찰하고서 잘 모르겠다며 아무 약이나 처방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 분명합니다.


추측의 위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추측을 삶의 전반에서 취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판단하는 추측, ‘아니면 말고’ 식의 말들, 한 가지 모습만을 보고서 ‘그 사람은 ~ 이런 사람이다.’라고 단정 짓는 모습 등등….


이 추측은 과거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향해서도 똑같이 범했던 죄였습니다.


유다인들이 돌을 집어 예수님께 던지려고 합니다. 죄목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하느님과 하나라는 예수님 말씀이 신성모독이기에 돌로 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성모독의 경우는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때에만 해당했습니다. 율법해석가인 랍비 압바우(300년)은 “어떤 사람이 나는 하느님이요 라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나는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는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즉, 굳이 따진다면 ‘거짓말’을 했다는 죄에만 해당하지, 신성모독 죄는 아닙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나는 메시아다.”라는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는 로마에 반기를 드는 행위였기에, 사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결국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는 유다인들의 모습입니다. 좋은 일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이 그토록 믿고 따른다는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내가 그 일들을 하고 있다면, 나를 믿지 않더라도 그 일들은 믿어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통해서라도 하느님을 믿으라는 호소인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많은 일들이 계속됩니다.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왜 받아들이지 못할까요? 어떻게든 믿지 않으려는 완고한 마음이 그 사랑의 손길을 보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이제 더는 함부로 추측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명언: 참다운 기도란, 내 뜻을 하느님께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계시는지를 묻는 순간이다(성녀 마더 데레사).



빠다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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