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0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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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식적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이나 행동을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부분 말합니다. 그렇다면 솔직한 사람은 어떠합니까? 거짓이나 숨김없이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사람 말입니다. 당연히 솔직한 사람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식적인 사람이 때에 따라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2014년 9월의 어느 날 했던 적이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외치며 광화문에서 단식 농성을 했습니다. 그때 이들 앞에서 피자 파티를 열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가족이 벼슬이냐!”면서 유가족들에게 큰 아픔을 주었습니다.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불순세력’이라며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자식을 잃고 가족을 잃은 그들에게 가식적이라도 위로해주면 안 되었을까요? 이때 아픔을 주는 ‘솔직’이라면, 아픔을 주지 않는 ‘가식’이 더 낫다 싶었습니다. 아픔을 주는 ‘솔직’보다 ‘무관심’이 더 나아 보였습니다.
종종 스스로 솔직하다며 “나는 뒤끝 없는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로 솔직할지는 몰라도 “저는 전혀 배려하지 않는, 사랑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을 위한 것이라면, 또 위로와 힘을 주는 것이라면, 가식이라도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 모습이 더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요?
주님께서 강조하신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즉, 하느님 나라를 열고 모든 사람이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물론 마지막 날에 악인과 선인을 가리는 심판이 있겠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 누구나 이 나라 백성이 되는 자격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늘 뛰어넘습니다.
우리는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대신 돌을 주지 않으며,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주지 않습니다. 하물며 사랑 가득하신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를 결코 나쁜 길로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늘 간곡히 기도해야 한다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그런데 기도에는 사랑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사랑의 실천을 주님께서 제일 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이를 주님께서는 황금률을 통해 가르치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솔직과 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 측면에서 바라보면 지금 해야 할 것이 분명해집니다.
오늘의 명언: 받은 상처는 모래에 기록하고, 받은 은혜는 대리석에 새겨라(벤저민 프랭클린).
빠다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