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6일 다해 연중 제7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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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하느님 나라는 부모다>
오늘 복음에서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오는 것을 막는 제자들에 대해 예수님께서 언짢아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4-15)
어쩌면 이 말씀이 마르코 복음의 핵심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르코 복음은 하느님의 나라에 관해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곧 하느님 나라임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주제가 핵심입니다.
먼저 마르코가 설명하려는 하느님 나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봅시다. 지금 마르코는 예수님의 두 번째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이유에 대해 풀어가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사람을 악에서 구할 수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의 수난이 아니면 사람은 사람과 평화롭게 지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리스도가 아니면 사람은 사람과 평화롭게 지낼 수 없을까요? 그리스도께서 ‘창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왜 창조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웃과 평화롭게 지낼 수 없을까요?
역사적으로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나라들은 생계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특별히 ‘바이킹’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8세기 당시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살던 북게르만족은 인구가 큰 폭으로 상승하자 그 척박한 땅에서는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 육로로 동쪽에 있는 나라들을 약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선박기술이 발달하자 바이킹은 잉글랜드 서쪽 지역을 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럽인들이 커다란 덩치에 무서운 도끼를 들고 싸우는 바이킹을 당해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바이킹은 오딘이란 신을 섬겼는데 싸우다 목숨을 잃으면 오딘의 나라인 발할라로 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전투 민족답게 방패 처녀라고 불리는 여성 전사가 전쟁에 다수 참여했고 고위직에 올라간 여전사가 존재했을 정도로 여성의 인권이 강한 편이었습니다. 여전사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약탈하기 위해 오랫동안 집을 떠난 남성들을 대신해 자신의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먹을 걱정이 없다면 목숨을 건 약탈은 왜 하겠습니까? 모든 약탈이 일어나는 이유는 생존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약탈하지 않습니다. 만약 어린이들이 부모의 돈을 훔친다거나 다른 아이들의 것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아이들이 생존에 대해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EBS 부모 – 저, 혼나러 나왔어요’에서는 4학년 남자아이를 호랑이보다 무섭게 체벌하는 어머니가 나왔습니다. 우리나라도 2021년부터 법적으로 아이에게 체벌하는 것은 불법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맞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자신은 매 맞지 않으면 제대로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물론 어머니에게도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지갑에 손을 대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이가 친구를 사귀기 위함이었습니다. 먼저 아이가 왜 약탈자가 되어가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부모가 먼저 아이에게 충분히 좋은 환경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의 환경입니다. 바이킹이 살던 땅처럼 척박한 부모는 바이킹처럼 약탈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환경에서 자라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체벌은 약탈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약탈자로 만듭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환경입니다. 부모가 생계 걱정을 하고 있다면 자녀는 어떨까요? 당연히 약탈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 되어주기 위해 제가 항상 추천하는 것이 ‘십일조’를 온전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에덴동산의 환경 안에 있다면 자녀도 에덴동산의 환경 안에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 아이가 약탈자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저는 디팩 초프라의 훈육법을 배우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빠가 먹고사는 건 다 책임질 테니까, 너희는 너희가 왜 태어났는지 그 이유를 찾고 이웃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만 생각하며 살아라.”
아들 둘은 에덴동산에서 산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것입니다. 형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잘 도와주었고 동생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가르쳐 주며 학교에 다녔습니다. 형은 인도에서 커다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동생은 하버드대 교수가 되었습니다.
디팩 초프라는 자신이 언제까지 좋은 환경이 되어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을 찾고 그 신이 창조한 이유를 찾으라고 합니다. 모든 창조된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사업가로 혹은 교수로 하느님이 부르셨음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런 삶이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춘기가 되어 부모가 더는 아이의 환경이 되어주지 못해도 아이들은 신의 섭리 안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이것과 반대되는 삶은 ‘경쟁’을 시키는 것입니다. 경쟁이란 환경은 지옥입니다. 지옥에서는 약탈자들이 생겨납니다. 약탈자들이 사는 세상은 또 지옥이 됩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녀를 낳을 부모는 없습니다. 약탈자를 낳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아는 자신이 자기 주인의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만 믿으라고 합니다. 그러나 뱀은 진정한 나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땅에 살고 싶으면 세속-육신-마귀의 욕망을 스스로 채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아를 환경으로 사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약탈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모기나 기생충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어떤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자아가 만들어낸 척박한 이집트와 같은 환경에서 종살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에덴동산에서 살고 있습니까? 어린이처럼 부모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린이는 자신에게 양식을 주는 이를 부모로 믿습니다. 이는 증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양식을 주는 부모를 찾지 않으면 지옥의 삶을 살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어 자아가 강해지면 자아는 그런 환경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며 창조자가 있다면 증거를 보여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기가 부모를 찾는 것은 증거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런 선택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느님 나라를 믿는 것은 선택입니다. 그 하느님 나라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창조자로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그분이 창조자이심을 믿기 위해 십일조도 내야 하지만 내가 에덴동산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자녀들도 또 다른 그리스도처럼 이웃을 사랑할 줄 아는 천국의 백성이 됩니다.
어린이처럼 단순하게 생각합시다. 어린이처럼 그리스도를 하느님 나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두 선택밖에 없습니다. 뱀의 나라를 선택하든, 하느님 나라를 선택하든.
https://youtu.be/JwW43nGrGzU
유튜브 묵상 동영상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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