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3일 사순 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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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은 정말로 부지런하신 것 같아요.”
어떤 자매님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솔직히 저 자신은 스스로 부지런하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게으르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해야 할 일을 뒤로 미루고, 귀찮고 하기 싫어서 핑계를 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부지런한 사람’으로 평가하십니다. 좋은 의미로 말씀하셨기에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지만, 분명 저를 완전히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유령으로 만들곤 합니다. 즉, 상대를 판단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이야기하며 세상에서 제일가는 악인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유령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의 부족함으로 인해 100%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판단에 앞서 다시금 되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유령 만들기’를 하는 것이 아닌지를 말입니다.
개인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다는 것은 힘듭니다. 그러나 그런 노력 자체를 하지 않는다면, 주님 역시 유령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반대자들이 간음한 여자 한 사람을 잡아다가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와서 판단을 재촉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약혼녀가 혼전 정사를 다른 남자와 범했을 경우 친정의 동네 사람들이 돌로 쳐 죽이라고 했고, 창녀는 군중이 돌로 치고 창으로 찔러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따를 수는 없었습니다.
유다인의 사법기관이라 할 수 있는 최고의회는 로마제국의 통치 밑에 있으면서 그들 자신이 직접 누구를 사형에 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자를 율법대로 돌로 치는 사형에 처하라고 하면 로마 행정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반대로 풀어 주라고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가장 멋진 말씀을 하시지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율법에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기 전에 적어도 두 사람의 증인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는 증인이 없었지요. 또 실제로 간음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간음한 여자의 상대 남자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고, 예수님을 곤란한 상황에 놓이도록 한 여자를 극한 상황으로 몰았던 것입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주님께서도 단죄하지 않는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단죄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오늘의 명언: 인생의 행복은 딱 한 가지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다(조르주 상드).
빠다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