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3일 사순 제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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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강아지, 고양이를 키우는 애견인, 애묘인이 참 많습니다. 동물을 예뻐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모든 사랑을 동물에게 쏟아붓습니다. 그러면서 사랑하는 동물과 대화를 하고 싶다는 말씀까지 하시더군요. 그래서일까요? 한때 ‘강아지 번역기’라고 해서, 강아지의 짖는 소리를 통해 어떤 말을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있었습니다. 물론 성능이 그렇게 좋지 않아서 지금은 시판되지 않는 것 같지만, 사람들이 많이 구매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대화하고 싶고, 사랑하는 자기 마음을 보여 주고 싶어서 이런 상품을 구매했겠지요. 그렇다고 자신이 개나 고양이가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인간이 아닌 그 동물이 되어야 동물의 언어를 할 것이고, 동물의 마음을 알고 자기 마음도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사람임을 포기하고 그 동물이 되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사랑과 전혀 다르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스스로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의 언어를 함께 나누고, 사랑의 마음을 나누기 위해 연약한 인간이 스스로 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런 사랑이 세상에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감히 인간의 사랑을 하느님 사랑에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의 광채가 빛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기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담소를 나누십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고, 엘리야는 예언서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율법과 예언서를 죽음으로 완성하면서 구원의 새로운 장을 여실 분입니다. 이 만남을 통해 구약시대의 유산이 신약시대에 인계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나서서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루카 9,33)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머물면 하느님의 영광 안에 계속 머물겠지만, 예수님께서 하실 구원의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5)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편한 대로 지금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주님과 함께하며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듯(창세 15,18 참조), 우리와도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계약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시기”(필리 3,21) 위함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데서는 변화될 수 없습니다. 계약을 통해 얻은 은총을 온전하게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배워 그런 사람이 되어라(핀다로스).
빠다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