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5일 주님 수난 성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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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안에서 주어지는 죄의 유혹에 올바르게 살기 힘들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죄의 구렁텅이 안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뉴스를 보면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악행의 모습들을 보며 진짜로 그렇다는 확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남들처럼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남들처럼 무감각하게 죄짓는 것이 당연하고, 오히려 이런 환경을 주신 하느님을 원망해야 할까요?
창세기에 나오는 롯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사촌 형인 아브라함과 땅을 나눌 때 자신의 욕심 차리기에 급급해서 비옥해 보이는 소돔에 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악으로 가득 찬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그네로 보이는 천사에게 행한 그의 모습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천사를 지키기 위해 모든 힘을 동원하지요. 결국 이런 사랑의 행동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속에서 탈출할 수 있게 했습니다.
오히려 악인이 가득한 소돔에 있을 때 그가 선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장소나 상황이 문제 되지 않습니다. 그보다 지금의 자리에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인들도 위기 체험을 통해 거룩해졌다고 하지요. 십자가의 성 요한은 수도회에서 독방에 갇혀 있어야 했었고, 이냐시오 성인들도 교회로부터 거부를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불평불만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순명하셨습니다. 이 안에서 주님께 대한 사랑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을 지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을 기억합니다. 주님께서 왜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셨을까요?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가장 큰 사랑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철저하게 순명하셨고, 사랑에 집중하셨기 때문입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을 향해 나뭇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라고 외쳤던 사람들이 이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며 적의를 보입니다. 옷자락이라도 만지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사람들이 이제 감히 예수님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습니다. 모든 악이 이 안에 가득한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 커다란 은총이 있었습니다. 우리 구원의 시작이 이 악을 이겨낸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도 악의 한 가운데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평불만으로 이 악을 이겨낼 수 없다면서 남들처럼 사는 편한 방법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악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서 이겨내셨듯이, 우리 역시 이 안에서 주님께 순명하면서 사랑에 철저하게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셨던 십자가의 길. 그 길이 바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나의 구원도 가까워집니다.
오늘의 명언: 용기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즉, 두려움이 없으면 용기도 없다(에디 리캔배커).
빠다킹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