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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7일 사순 제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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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요한 8,51-59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시선의 폭과 받아들임의 관계 


어느 날 버스에 한 초라한 신사가 탔습니다.

멈칫멈칫 하는 것을 보니 사람들에게 무언가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자신이 없어 보입니다.

전화를 하는 아주머니, 친구들과 떠드는 학생들, 혼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청년, 그저 멍하니 한 곳만 바라보는 사람, 이들은 그 초라한 사람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그 분은 용기를 내서 버스 중앙을 향하였고 입을 떼고 기어가는 목소리를 말합니다.

“여러분 오늘 제 아내가 심장병 수술을 받습니다. ... ”

이 때 전화를 걸던 아주머니는 다 들리란 듯이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어이구, 이젠 지 마누라까지 팔아먹네... 창피하지도 않은가?”

다른 사람들도 왠지 자신들이 지금까지 해 오던 것에 더 집중하는 모습입니다.

아마도 자신들을 방해하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더 크게 떠듭니다.

그 신사의 눈에 눈물이 고입니다.

그리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무관심한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제 아내가 수술을 받습니다. ... 단 1초만이라도... 단 1초만이라도... 함께 기도해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분은 돈이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다. 1초의 관심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들도 이 바쁜 세상에서 남의 이야기에 단 1초도 관심을 가져줄 수 없도록 앞만 보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장 앞만 보고 깊고 넓게 보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당구의 고수들은 공을 치면 어떻게 모여서 다음에 어떻게 또 칠 것인가를 미리 내다보지만, 저 같은 하수들은 하나만 쳐도 만족하기 때문에 당장 앞에 보이는 것만 칩니다. 


장기나 바둑, 심지어는 고스톱까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먹는다면 결국 게임에서는 승리할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래서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장기를 둘 때는 잘 못 두지만 훈수를 둘 때는 잘 두게 되는 것이 멀리서 더 넓은 시선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고수들은 모두 넓은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일어나는 일이나 당장 들은 이야기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해 버리는 것은 인생의 하수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저도 사제가 될까 말까 현재만 바라보고 현재만 고민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부모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여 행복이란 모토를 통해 내 생의 시작부터 나를 사제의 길로 부르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는 확신이 생겨 흔들림이 없게 되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고수가 되는 길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하느님의 섭리가 나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당장 앞만 보는 것은 자신의 시선이고, 시공을 초월해서 보는 것은 하느님의 시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가 아니라 ‘있다’라고 현재형을 쓰십니다.

하느님에게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습니다. 모두가 현재입니다.

이는 과거와 미래가 서로 동떨어진 무엇이 아니라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고현재가 없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시선은 이렇게 모든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보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냥 나를 무조건 싫어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나를 싫어하는 이유나 알자고 따질지 모릅니다.

잘못 한 것도 없는데 왜 나를 미워하느냐고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너무 근시안적으로 바라보아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전에 [안녕하세요]란 프로에 어머니에게 2년 동안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청년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자기에게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결해 달라고 방송 신청을 한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고등학교 때 자신을 너무나 괴롭히던 친구의 모습이 어머니에게서 보였기 때문이란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에겐 사실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 때문에 상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화부터 냈다면 문제는 더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이해가 안 돼!’라고 말한다면 본인의 시야가 협소하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당장 일어나는 현상만 보고 판단하지 맙시다.

그렇게 좁은 시선으로는 협소한 판단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넓게 봐야 더 많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볼 때 당장 눈앞에 보이듯이

그저 요셉의 아들로밖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시야가 그만큼 좁았기 때문입니다.

시야가 좁은데 어떻게 그 크신 하느님이 보일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시선으로 보면 인간이 보이고, 하느님의 시선으로 보아야 하느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 떨어져서 바라봅시다.

보는 만큼 이해하고 보이는 만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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