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7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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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도와달라고 찾아오는 분이 계십니다. 많지는 않지만 얼마를 도와 드립니다. 대부분 감사의 인사를 하시며 나가십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받은 돈을 들고 화를 냅니다. 이 정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마치 돈을 맡긴 것처럼 외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교회가 어려운 자신을 반드시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도와드리지 않았습니다. 화를 내면서 성지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아주 좋은 차를 몰고 어디를 가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하시는 분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었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말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예레 17,5.7)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부자가 바로 사람에게 의지하고 모든 것을 제힘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감사하는 겸손을 보이지 않았고 불쌍한 이웃을 돕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의 힘에 의한 것으로만 착각하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던 것입니다. 그에 반해 라자로는 오로지 주님을 신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름 뜻이 ‘하느님의 손길이 닿아 있는’이라는 점을 보면,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감사했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기에 이런 이름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삶을 마친 후에 예레미야 예언자의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부자는 저승에서 고통을 받게 되고,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에서 하늘나라의 기쁨을 누리고 있게 됩니다.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하게 원했습니다. 당시에는 식사가 끝나면 손을 씻는데 빵으로 손을 문질러 씻었습니다. 그리고 씻은 부스러기를 식탁 밑으로 던집니다. 원래 이것은 개들의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라자로는 이것으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원했습니다. 아주 비참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불평불만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어떠했을까요? 저승의 고통에서 곧바로 아브라함에게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라자로를 종 부리듯이 물을 찍어 자기 혀를 식히게 해달라고 하지요.
부자와 라자로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이 모습을 보며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불평불만 없이 작은 것이라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잘한 것은 자기 탓이고, 못한 것은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늘 불평불만 속에서 사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의 실수에 화가 난다면 즉시 자신을 돌아보고 비슷한 실수가 없는지 생각해보라. 그의 충동적인 행동에서 내 모습을 발견한다면 금세 화가 가라앉을 것이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빠다킹 신부